나눔의 동산에서 온 편지(11월)
<제가 강원대를 퇴직 후에도 강원대 메일을 썼는데 시스템이 바뀌어 메일 사용이 불편하여 잘 사용하지 않다가 최근 복구하였더니 "나눔의 동산에서 온 편지" 제때 올리지 못하고 한꺼번에 올리게 된 점 양해를 구합니다.>
무심한 듯 흐르는 시간 속에서 주어진 일들을 감당하는 일상을 들여다보니 어쩌면 매일매일 기적이었구나...를
실감하며 문안드립니다.
시시한 것 같은 우리의 하루하루는 온전한 은혜로 채워져 있습니다.
하루를 살려면 참 많은 일이 일어나는데 그 일들이 해결되고 정리되니 놀랍지요.
늘 말하고 듣는, 서로 돕고 사랑해야 한다는 식상한 말의 위력도 실감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이끄심 속에 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징징이에 고집불통 은경씨와의 하루하루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울며 소리 지르는 것으로 소통하지요.
기저귀와 함께하기에 아침에 목욕을 하고 있습니다.
새벽 2시든 3시든 본인이 눈을 뜨면 빨리 일으키고 목욕시키라고 소리 지릅니다.
그 소리에 다른 방에서 자는 식구들이 일어나니 다시 재우느라 소동이 일어나지요.
은경씨와 같은 방을 쓰는 정혜씨에게 미안해서 힘들죠? 하고 물어 봤습니다.
“괜찮아요... 안 시끄러워요... 난 혼자자면 무서운데 소리 지르는게 더 좋아요...”
정혜씨의 대답에 기막힌 짝꿍을 만난 은경씨가 부러웠지요...
이런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지적장애와 정신장애가 있는 윤희씨는 어느새 50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20대에 한 식구가 되어 살면서 윤희씨가 갖고 있는 질투심에 참 힘들었습니다.
찬양, 말하기, 운동, 노는 것 등... 다 본인이 제일 잘해야 하지요.
다른 사람들이 잘해서 칭찬 듣고 기뻐하면 속상해서 괜한 트집을 잡기도 합니다.
생각 끝에 성경쓰기를 시작했습니다.
똑똑하고 멋진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라는 부추김에 참 열심히 쓰기 시작했지요.
질투심에 괴로워도 쓰고, 화가 나도 쓰고, 심심해도 쓰고, 자존심 때문에 쓰고...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한글 흉내를 낼 수 있어서 그냥 쓰기 시작한거지요.
그러는 동안 마음이 평안해졌으며 자존감이 생겼습니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에 평상에서 성경을 쓰던 윤희씨가 한마디 합니다.
“내가 성경을 안 썼으면 어쩔 뻔 했지?”
뜻도 모른 체 쓰기 시작한 성경이 사람을 변화시켰습니다.
카페동산 소식입니다.
3학년 학생들이 취업을 한 탓인지 학교도 썰렁하고 카페도 허전합니다.
취업해서 못 온다며 인사하는데 좋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섭섭하기도 하네요.
배고파서 오고, 맘이 꿀꿀해서 오고, 갈 데 없어 오던 카페가 그리울 것 같답니다.
3년만 봐주고 인정해 주면 졸업해서 어른 되어 떠나는 모습이 든든합니다.
사람을 세우는 일에 함께 해 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2022년 11월 22일 나눔의 동산에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