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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낫고자 하느냐? [ 2019/09/29 ]

  • 조회 : 642
  • 성경말씀 : 요한복음 5:1-9
  • 설교자 : 황종윤 목사
  • 설교일 : 2019-09-29

네가 낫고자 하느냐?

 

모든 사람에게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 소원 가운데 가장 절실하고, 간절한 소원은 병이 낫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예수님이 병을 고쳐 주신 이야기가 가장 많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 이야기 중에 하나죠.

 

말씀 속으로

본문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곳은 베데스다라는 큰 연못이었습니다.

베데스다 = 자비의 집

이 연못은 제법 규모가 큰 곳이었고, 거기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3절과 4절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그러니까 자비의 집이라는 베데스다에서 실제 자비를 입을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인가요? 딱 한 사람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실망을 경험한 채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름에서부터 모순이 있습니다. 실제 베데스다는 자비가 없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정말 자비의 집이라면, 모든 병자가 나아야 합니다.

그런데 베데스다 연못은 모든 사람이 고침을 받는, 자비를 경험하는 곳이 아니라 딱 한 사람만 자비를 경험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자비의 집이 아니라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곳입니다.

먼저 들어가는 자만 고침을 받는 비정한 곳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베데스다 연못의 풍경을 한 번 상상해 보세요.

평상시 사람들의 모습과 물이 움직일 때의 모습이 같을까요? 다를까요?

평상시에는 서로 챙겨 주기도 하고, 먹을 것을 나눠 먹기도 하고, 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해 주기도 했을 겁니다.

가끔은 선심 쓰듯이 다음에는 네가 먼저 들어가라고 축복해 주기도 했을 겁니다.

하지만, 막상 실제 상황이 벌어지면, 물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베데스다 연못에 모여 있었던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정말 평상시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서로를 배려했듯이 그렇게 서로 양보하고, 가장 오래 되었거나, 가장 심각한 병자들에게 기회를 주는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졌을까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만일 그랬다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만났던 38년 된 병자가 0순위가 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실제는 달랐습니다. 평상시 평화로운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가장 먼저 들어가기 위해 몸싸움이 일어났을 겁니다.

그래서 38년 된 병자는 항상 그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습니.

그래서 베데스다 연못에서 그 병자가 가장 먼저 들어가고침을 받는 일은 아예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죠.

혼자 들어갈 수 없고, 누군가가 넣어 주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38년 된 병자는 자신이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그곳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냥 어쩔 수 없이 그곳을 떠나지 못한 채 체념하고 살았던 것입니.

예수님이 찾아 가셨던 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질문하셨죠? “네가 낫고자 하느냐?”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뭐라고 해야 할까요?

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만일 이 병자가 정말 그런 소망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었다면, 누가 물어보더라도 주저함 없이 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38년 된 병자는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예나 아니오가 아니라 전혀 엉뚱한 대답을 합니다. 7절입니다.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저는 38년 된 병자의 이 대답을 읽을 때 그에게서 원망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1) 자신을 넣어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 2) 38년 동안이나 매번 실패했던 자신에게 양보해 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

이 병자에게는 자신도 나을 수 있다!’는 소망 보다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원망으로 보낸 시간이 더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던 이 병자에게 예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엉뚱한 대답을 하는 이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병자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습니다.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보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병자를 눈 여겨 보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고, 아무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는, 예수님은 그 병자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 보셨습니다.

사랑의 시작, 기적의 시작은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바라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예수님이 똑같은 마음으로, 똑같은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고 계시고, 여러분을 바라보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가졌느냐? 무엇을 잘 하느냐? 어떤 위치에 있느냐를 보지만, 예수님은 우리 모습 그대로를 보십니다.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38년 된 병자,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그냥 누워 있었던 그 병자를 보신 것처럼, 저를 바라 보시고, 여러분들을 바라 보십니다.

예수님의 그 시선을 느끼며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병자의 상황과 형편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척 보면 압니다!’ 라는 유행어가 생각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병자를 아셨고, 그의 인생을 아셨고, 그의 아픔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우리의 상황과 형편을 아십니다.

사람들은 몰라도, 심지어는 가족조차 몰라도 주님은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가 오십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그 병자를 향해 다가가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라고 물으셨던 것처럼 저에게도, 여러분에게도 다가 오십니다.

 

예수님은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의 기준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으십니다.

만일 그러셨다면 예수님은 절대로 38년 된 그 병자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 사랑의 예수님은 오늘 예배하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찾아 오십니다.

경쟁에서 이기고, 베데스다 연못에 뛰어 든,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실패만 맛보았던 그 병자에게 찾아오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찾아 오십니다

우리를 보시고, 우리를 아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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