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덴 사람들아 (5/28)
옛날이나 지금이나 낯선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독교가 전파되어 나갈 때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사도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아덴에 왔습니다. 당시의 최고의 학문 철학의 도시 새로운 사상이나 학문이 소개될 때 아덴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 바울이 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아덴에 와서 학문성 철학 지혜에 놀란 것이 아니라 우상으로 가득 차있는 것을 목격하고 애통함을 가지고 그들을 힐난하거나 비방하지 않고 그들의 문화 학문 존중하면서도 복음을 전합니다. 이것이 전도자의 마음 하나님이 주신 마음 성령님이 주신 마음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덴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했습니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내가 그것을 알게 하리라 했습니다. 그 알지 못하는 신이 곧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으신 분 만유의 창조자 전능자 하나님이심을 소개합니다.
사람은 본래 종교심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모든 인간심성에 무엇인가 의지하려고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문화인이나 미개인이나 빈부 귀천 상관없이 그래서 수많은 신들이 있습니다. 당시 아덴에는 3만여개의 신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십계명 첫번째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덴의 사람들이 신들을 많이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려주며 믿어야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으시기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했습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에게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으며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시고 가까이 계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고 우리가 그의 소생 자녀들인데 하나님을 금 은 돌 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 허셨지만 이제는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으니 믿어야 산다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사야선지는 외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찿으라—용서하시리라 (이55:6-7)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는 길은 진정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는 길입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희게 되리라(이1:18)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으시고 살아계시는 분이십니다. 곤고할 때도 형통할 때도 여전히 하나님이시요 지금도 하나님이십니다. 사도바울이 아덴사람들에게 담대히 복음 예수그리스도를 전한 것과 같이 우리들도 담대하게 전하여 함께 구원의 생활 축복의 생활해야 할 줄 믿습니다. 이 길만이 구원의 길 영생의 길 진정한 삶의 길입니다. 이 복음 전하여 함께 구원의 역사 이루어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